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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관찰자"의 알콩달콩 신혼생활/신혼여행

[탄자니아 5일차-3]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누의 사체를 뜯어먹는 벌처들

by 자연과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관찰자 2026. 3. 8.

끝없이 흔들리던 흙길 위에서

멀리서는 기린이 천천히 걸어가고, 그 옆으로 얼룩말, 임팔라, 그 사이를 스르륵 스쳐 지나가는 새까만 새들까지 보였습니다.
“와, 진짜 동물의 왕국이다…”라는 말이 새어나오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그 장면이 제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평화로워 보이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얼굴의 아프리카를 마주했으니까요.

벌처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벌처, 한국어로는? 실제로 사체 먹는 영상과 사진 (탄자니아 여행기)

벌처(Vulture)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스캐빈저(청소부) 조류인 대머리수리류를 총칭해요.(수리과, 콘도르과로 분류)강력한 소화 능력으로 썩은 고기를 처리하며, 머리에 깃털이 거의 없는 것

slow-breathing.com

 


벌처를 처음 “제대로” 본 날

국립공원 화장실 가려고 차를 내리려할때, 가까이서 벌처를 봤습니다.
그때까지는 큰 새였고, 시체를 먹는 줄은 알았으나 딱히 별 새각은 없었죠.

투어를 계속 진행하던 중, 저 멀리서 검정 새들이 하늘위에서 빙빙 돌고있더라구요. 

가이드는 슬쩍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렇게 모여 있으면, 보통 아래에 뭔가 있는 거예요.”


누의 사체, 갑작스러운 적막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쪽에 다른 사파리 차량들이 몇 대 서 있었죠. 

그 순간 ‘아, 여기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사실상 딱히 사체 냄새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누 한 마리가 누워 있었습니다.
거의 뼈만 남았고, 뼈에 붙은 약간의 빨간색의 살코기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사자나 버팔로 등 다른 동물들을 볼때와는 다르게 적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잔인함”과 “당연함” 사이 어딘가에서

벌처는 생각보다 훨씬 무뚝뚝해 보였습니다.
자기들끼리 먹이를 경쟁하는라 조금씩 다투기도 하는 것 같았어요.

 

눈빛을 보지는 못했으나,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마리가 부리에 힘을 줘서 살점을 잡아당기면, 뒤에 있던 다른 벌처가 밀치고 들어와 함께 뜯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또 다른 벌처들이 내장을 길게 먹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꽤 잔인한 장면입니다.
늘어진 내장, 여기저기 깃털들까지, 어느 것 하나 부드럽게 포장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잔혹 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이곳에서는 지금 이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공기 자체가 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이드는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아마 사자가 누를 사냥했을거고, 남은걸 처리하는 중일 것이라고요"

잔인함과 자연스러움이 한 줄 위에 겹쳐진 채로 오래 남았습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지던 순간

신기한 건, 그런 장면을 보고 나면 오히려 ‘살아있다’는 감각이 더 또렷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어서였을까요.

차를 다시 타고 평원을 바라보는데, 방금 전까지는 “와, 예쁘다” 정도로만 느껴졌던 풍경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그냥 풀을 뜯고 있는 임팔라, 느릿느릿 걸어가는 코끼리, 나무 그늘에서 낮잠 자는 사자.
그저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와, 저 사자 귀엽다” 하고 웃는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누 한 마리가 조용히 죽어가고,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벌처가 날개를 펴고 내려앉고 있을 겁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수많은 끝과 시작들 사이에서,
저는 그저 지프 안에서 카메라를 쥔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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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조금의 착잡함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순간의 감정이 마냥 경이롭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입안이 약간 씁쓸하고,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느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동물 다큐멘터리 속 장면들은 적당한 거리의 줌, 잘 깔린 음악, 편집 덕분에
‘와, 자연의 위대함’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한 자연은 달랐습니다.
온도, 침묵, 그리고 ‘내가 지금 이걸 직접 보고 있다’는 현실감이 먼저 들이닥쳤습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위치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생각보다 훨씬 더 ‘하나의 동물’에 가깝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가고 싶은 곳

이상하지요.
그렇게 착잡함까지 느껴놓고도, 탄자니아를 떠난 뒤로 저는 계속 다시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 이유는, 그곳의 자연이 예쁘게 포장된 ‘힐링’이 아니라,
생명의 맨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누의 죽음, 벌처의 식사, 그 옆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던 다른 초식동물들,
뜨거운 바람, 붉은 흙먼지, 밤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별빛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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