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하 위 영상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눈, 부드러운 곡선, 파란 하늘이 참 평화롭죠. 그런데 그 안에 실제로는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로 깊은 틈이 숨어 있습니다. 이 매끈한 눈밭 아래를 갈라놓는 존재가 바로 크레바스입니다. 저도 아이슬란드나 북극 사진 볼 때는 ‘와 저기 한번 걸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크레바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아… 이건 전문 가이드 없이는 절대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이번 글에서는 크레바스가 도대체 뭔지, 왜 위험한지, 그리고 아이슬란드, 알프스, 북극 같은 곳에 여행 갔을 때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여행자 입장에서 재밌고 실용적인 포인트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크레바스,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크레바스(crevasse)는 쉽게 말해서 ‘빙하 위를 가르며 생긴 거대한 갈라진 틈’입니다. 빙하는 생각보다 꽤 빨리, 1년에 수십 미터씩 천천히 흘러내리는데, 이때 얼음이 휘어지고 늘어나면서 견디지 못한 부분이 찢어지듯 갈라지죠. 그 결과 길게는 수백 미터, 깊이는 보통 30~45m 정도의 수직에 가까운 틈이 만들어지고, 넓이는 1~20m 정도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 키의 10배 이상 깊이까지 한 번에 떨어질 수 있는 구멍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겉에서 보면 마치 파란 얼음 협곡처럼 아름답기도 한데, 이게 문제입니다. 크레바스 벽은 매우 가파르고, 내부는 단단한 얼음이라 한 번 떨어지면 스스로 기어 올라오기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눈이 조금만 쌓이면 위에 ‘스노우 브리지(snow bridge)’라는 눈 다리가 생겨서 표면만 보면 그냥 평평한 눈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닌 살짝 꺼진 눈, 미세한 색 차이 정도인데, 그 아래가 그대로 크레바스 입구인 경우가 있는 거죠.
빙하 위 크레바스는 종류도 조금씩 다릅니다. 빙하가 흐르는 방향과 직각으로 생기는 횡단 크레바스, 빙하가 모서리에서 휘어질 때 생기는 사선 크레바스, 빙하가 절벽이나 낭떠러지를 만나면서 생기는 낭하 크레바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모두 떨어지면 끝장날 수 있는 구멍”으로 이해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죠. 중요한 건, 사진으로 보면 ‘와 멋있다’인데, 실제로는 굉장히 동적인 얼음의 파열 흔적이라는 점입니다.
재밌는 점은, 크레바스 벽이 마치 지층 단면처럼 빙하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창문 역할도 한다는 겁니다. 얼음이 쌓였다 녹았다를 반복한 층, 먼지, 화산재가 앙상블처럼 켜켜이 드러나는데, 과학자들은 이런 단면을 보며 수십, 수백 년 전의 기후와 환경을 역추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크레바스는 위험한 함정이면서 동시에 지구의 과거를 보여주는 거대한 타임캡슐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크레바스 속에 갇힌 시간들, ‘얼음 미라’와 생존 이야기
빙하와 크레바스가 무서운 동시에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 안이 거의 완벽한 냉동 보존고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유명한 ‘외치(Ötzi) 아이스맨’은 약 5,000년 전 사람의 시신이 고산 빙하에 매몰된 채 거의 자연 냉동 상태로 남아 있었던 사례입니다. 이 유해는 현재 이탈리아 볼차노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발견 당시 옷, 장비, 문신까지 상당히 잘 남아 있었고, 연구팀은 외치가 살던 시기의 기후와 빙하 조건까지 역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 덕분에 빙하는 과거 인류와 기후를 그대로 저장하고 있는 ‘얼음 아카이브’로 불리기도 하죠.
빙하 속에서 잘 보존된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고산에서 추락한 비행기나 장비, 동물 사체가 수십 년 뒤, 심지어 그 이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빙하의 이동, 녹는 과정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물건들이 꼭 크레바스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라진 틈으로 떨어져 아래에서 오랜 시간 보존되는 경우가 있어, 구조나 수습이 극도로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여행자로서는 “빙하에 뭐 떨어뜨리면 영영 못 찾겠다”는 정도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생존 이야기로 넘어가면, TV에서 자주 봤던 베어 그릴스 역시 북극, 아이슬란드 같은 곳에서 크레바스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으로 아이슬란드 편에서 거대한 빙하를 건너며 깊게 갈라진 얼음 틈과, 그 사이를 건너기 위해 로프를 이용하고, 얼음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장면이 나오죠. 북극권 에피소드에서는 얼음 동굴과 좁은 틈을 통과하다가 몸이 낀 채로 빠져나오는 장면도 있는데, 실제 빙하 지대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카메라와 촬영팀 없이 혼자라면 생존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실제 사고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슬란드 랑요쿨 빙하에서는 관광 중이던 모자가 크레바스로 추락해, 약 30m 깊이에서 구조 작업이 진행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다행히 생존했지만, 구조대는 좁은 틈으로 한 명씩 거꾸로 매달려 들어가야 했고, 수 시간에 걸친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 “빙하 위에서 한두 발짝 잘못 디디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한편, 학계에서는 크레바스를 통해 빙하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지, 또 기후 변화로 얼음이 얼마나 불안정해지고 있는지 연구합니다. 최근 그린란드 빙상에서는 빙하 흐름이 빨라진 지역에서 크레바스 부피와 개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연구도 발표됐습니다. 쉽게 말해, 지구가 더워지면서 빙하가 더 빨리, 더 거칠게 움직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크레바스가 생기고 있다는 뜻이라, 여행자 입장에서도 “예전보다 더 안전해졌겠지”가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이유가 늘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슬란드, 북극 여행에서 크레바스 피하는 법
그럼 실제로 아이슬란드, 알프스, 북극 같은 곳에 놀러가면 크레바스를 어떻게 피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혼자 빙하에 올라가지 않는다, 무조건 인증된 가이드와 간다”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위험은 크게 줄어듭니다. 아이슬란드 안전 사이트와 여러 투어 회사들도 공통적으로, 경험이나 장비 없이 혼자 빙하 위에 올라가는 건 절대 금지라고 강조하거든요.
가이드 투어를 선택하면 기본적으로 헬멧, 아이젠, 하네스, 필요할 경우 로프까지 지급되며, 빙하 위를 어디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크레바스가 있을 만한 지점은 어떻게 피하는지 안내를 해줍니다. 빙하 투어 회사들은 매 시즌마다 크레바스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위험 구역을 피해 루트를 설정하는데, 아이슬란드의 공식 안전 사이트에서도 이런 지도를 활용해 고위험 지역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구조대나 연구팀들은 눈 아래 숨은 크레바스를 찾기 위해 지상 레이더(GPR)를 장착하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일반 여행자 눈에는 절대 안 보이는 것들을 장비와 경험으로 읽어내는 셈이죠.
만약 가이드와 함께가 아니라, 주변에 빙하나 눈 덮인 지형이 있는 곳을 산책하는 정도라면, 최소한 이런 징후는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눈 표면이 주변보다 살짝 움푹 꺼져 있다거나, 좁고 긴 선처럼 가라앉은 부분이 보이면, 그 아래에 빈 공간, 즉 크레바스나 눈 다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눈 색깔이 주변보다 미묘하게 다르거나, 길게 이어진 균열 같은 패턴이 보여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곳은 “궁금하니까 한번 밟아볼까?”가 아니라, 그냥 크게 돌아가는 게 정답입니다.
산악인들은 눈 다리의 두께를 확인하려고 스키 폴, 아이스 액스, 프로브(길게 펼쳐지는 막대)를 눈에 찔러보며 아래가 비어 있는지 확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장비와 기술, 경험을 갖춘 사람들의 영역이고, 일반 여행자가 따라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큽니다. 또, 크레바스 지역에서는 항상 여러 사람이 로프에 서로 묶인 상태로 이동하는데, 누군가가 빠졌을 때 나머지가 버티고 구조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로프 없이 혼자 빙하 위를 걷는 건 “실수하면 누구도 나를 끌어줘야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실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이런 점들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 빙하 하이킹, 아이스클라이밍은 반드시 인증된 가이드 투어를 예약한다.
- ‘빙하에 혼자 걸어가 볼까?’ 같은 즉흥 산책은 하지 않는다, 특히 겨울, 봄철에는 더더욱.
- 눈이 이상하게 꺼진 곳, 긴 골처럼 보이는 지형, 알 수 없는 균열 무늬는 가능한 크게 돌아서 지나간다.
- 안내판, 안전 경고, 로프나 말뚝으로 막아둔 구역은 절대 넘지 않는다.
조금 더 욕심이 나서 본격적인 빙하 트레킹이나 고산 등반을 하고 싶어지면, 그때는 ‘크레바스 구조’ 교육 과정까지 포함한 전문 코스를 듣는 게 좋습니다. 실제 교육에서는 눈과 얼음에 확보물을 설치하는 법,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도르래 시스템으로 끌어올리는 법, 로프에 매달린 상태로 오르는 기술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런 기술은 실습 없이는 몸에 잘 안 붙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 따라 하기보다는, 직접 강습을 듣는 것이 결국 본인과 동료를 지키는 길이죠.
매끄러운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균열을 떠올리며
빙하는 멀리서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매끈한 표면 아래에는 몇십 미터 깊이의 크레바스, 눈으로 덮인 숨은 틈, 그리고 때로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얼음 아카이브가 같이 숨어 있습니다. 여행자로서는 이걸 두려움보다는 ‘존중해야 할 대상’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죠. “저 안쪽까지 한번 더 가볼까?”라는 호기심을 조금만 참으면, 굳이 구조대 도움을 받을 일도, 뉴스에 실릴 일도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 아이슬란드나 북극권 여행을 가게 된다면, 빙하 위를 걷는 체험은 분명 강렬한 기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 한 발 한 발 뒤에 크레바스라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었다는 사실도 같이 떠올리면서요. 과학적으로는 빙하의 스트레스와 흐름이 만든 결과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연이 인간에게 딱 여기까지만 와도 된다고 그어놓은 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젠가 직접 빙하 위를 걸어보게 된다면, 그때는 안전장비, 가이드, 그리고 약간의 겸손까지 풀 세트로 챙겨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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