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구 멸망 위기, 기억 상실, 우주 미션, 외계 존재까지 한 번에 안고 가면서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과학적인 디테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인물의 감정과 선택을 중시하는 독자에게도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참 독특한 작품이죠.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작가는 진짜 계산 다 해보고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뒷내용이 궁금해 새벽까지 잠을 줄이며 다 읽었습니다. 너무 재밌게 읽은 나머지 앤디 위어가 천재라고 극찬한 인스타 스토리까지 올렸습니다. (평소에는 잘 올리지 않아요)
기억을 잃은 한 남자, 우주에서 눈을 뜨다
이야기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 남자가 우주선 침대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변에는 익숙하지 않은 장비들, 이상한 기계들, 이미 죽어버린 동료 둘이 있을 뿐이고, 그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인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합니다. 독자도 주인공과 똑같은 정보만 가진 채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같이 퍼즐을 푸는 느낌으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죠.
조금씩 플래시백이 끼어들면서, 이 남자가 한때 과학 연구를 했던 사람이고, 이후에는 중학교 과학 교사로 살아가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지구가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지의 미생물 때문에 태양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고, 그 결과 장기적인 빙하기, 에너지 붕괴, 문명 붕괴의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배경도 함께 밝혀지죠. 인류 전체가 서서히 얼어붙어가는 상상은, 에너지나 기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실감 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각국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태양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이름부터가 마지막 기도라는 뜻의 헤일메리, 말 그대로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싶은 최후의 시도인 셈이죠.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이 계획의 중심에 서 있고, 독자는 그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묘한 긴장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수소, 암모니아, 질소, 산소… 과학으로 시작한 우주적 우정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학이 언어가 되는 순간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주인공은 자신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까지 날아온 외계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데, 당연히 언어도, 생김새도, 환경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건 물리 법칙, 화학 반응, 숫자뿐이죠.
그래서 두 존재는 수소, 암모니아, 질소, 산소 같은 기체를 주고받으며 반응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농도를 바꾸고, 온도를 조절하고, 반응 결과를 보면서 “이건 너에게 어떤 의미냐”, “나는 이걸 이렇게 쓴다”를 하나하나 맞춰 나가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상황에서, 기체의 농도와 반응 패턴만 가지고 상대의 의도를 추론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이 외계 존재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나름의 사회, 문화, 사고방식을 가진 지적 존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별 역시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위협받고 있고, 그 행성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날아온 상황이라는 점이 밝혀지죠. 인류가 지구를 구해야 하는 것처럼, 이 존재도 자기 세계를 구하려는 입장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둘 사이에는 종을 뛰어넘은 묘한 동료 의식이 생깁니다.
특히 수소와 암모니아, 산소 같은 기체들이 단순한 실험 재료를 넘어서, 둘 사이의 신뢰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도구로 변해가는 지점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과학적 언어가 곧 감정의 언어가 되는 장면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건 단순한 SF가 아니라, 과학을 매개로 한 우정 이야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과학과 인간적인 선택이 만나는 지점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겉으로 보면 지구를 구하기 위한 거대한 재난 SF처럼 보이지만, 안쪽에는 결국 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 임무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정말 자발적인 선택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정치적 계산이나 여론, 두려움이 어떻게 작용했는지가 뒤늦게 밝혀질 때 꽤 씁쓸한 기분이 들죠. 아무리 거대한 과학 프로젝트라고 해도, 그 뒤에는 늘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앤디 위어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은 전혀 사라지지 않습니다. 치명적인 상황에서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툭툭한 농담, 외계 친구와 주고받는 짧은 장난들은 읽는 사람을 이상하게 안심시키고, 둘 사이의 관계에 자연스럽게 정을 붙이게 만들어요. 과학, 위기, 고독, 웃음이 이상한 비율로 섞여 있는데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인 인간성을 더해 줍니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주인공은 더 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눈앞의 단 한 존재를 구하는 것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다가와요. 영웅 서사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정한 계산만 남겨두지도 않는, 묘한 현실감이 있어서 저는 이 결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학, 과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스트로파지의 특성, 에너지 흡수 메커니즘, 우주선 설계, 기체 조성 같은 부분에서 “와, 이걸 여기까지 파고들어?” 하는 재미를 느끼실 거예요. 반대로 SF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주인공이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과, 외계 친구와 쌓아가는 우정, 그리고 마지막 선택에 집중해서 읽다 보면 그냥 정말 잘 만든 이야기 한 편을 본 기분이 드실 겁니다.
마션을 좋아했다면 꼭 읽어야 할 한 권
정리하자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적 상상력, 문제 해결의 쾌감, 우정과 선택이라는 감정선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드문 SF 소설입니다. 수소, 암모니아, 질소, 산소 같은 차가운 과학 언어로 시작했다가, 결국 따뜻한 인간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흐름이 정말 매력적이죠.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우주 어딘가에서 여전히 그들이 실험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션을 재밌게 보셨다면, 이 작품은 한 단계 더 확장된 세계와 감정을 보여주는 소설로 느껴지실 거예요. 나중에 아르테미스까지 함께 읽고, 앤디 위어가 우주와 인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분, 우주 배경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그냥 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찾는 분 모두에게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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