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자니아 사파리 준비하면서 처음 ‘누(wildebeest, 와일드비스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솔직히 감이 안 오더라고요. 사진을 봐도 “소인가? 버팔로인가?” 싶고, 생김새는 살짝 어설퍼 보이는데 세렝게티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하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실제로 사파리에서 누떼를 보고 나니, 이 동물은 ‘예쁘다’보다는 ‘이렇게까지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오늘은 그 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세렝게티를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이게 만드는 누떼의 대이동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소야? 버팔로야? 누라는 동물의 정체
한국에서는 동물 다큐를 챙겨보는 분들이 아니면 ‘누’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죠. 누는 영어로는 와일드비스트, 큰 영양(antelope) 계열 동물입니다. 겉모습은 소, 버팔로, 말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소과(bovidae)에 속하는 영양의 한 종류예요.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에서 대이동을 이끄는 누는 주로 ‘블루 와일드비스트(blue wildebeest, 파란누)’라고 부르는 종입니다. 회색빛이 도는 남색·청회색 털 때문에 블루라는 이름이 붙었고, 성체 수컷 기준 어깨 높이 약 1.4m, 체중은 최대 250~290kg 정도로 생각보다 덩치가 큽니다. 머리에는 양처럼 휘어진 뿔이 양쪽으로 나 있고, 어깨 부분이 특히 근육질이라 앞부분이 더 크고 무거워 보이는 체형이죠.
재밌는 점은 누가 혼자 다니지 않고 항상 얼룩말, 톰슨가젤 같은 다른 초식동물들과 섞여 다닌다는 것입니다. 풀을 뜯어먹는 층이 서로 달라서, 얼룩말이 먼저 긴 풀을 잘라주면 누가 그 다음 짧아진 풀을 먹고, 그 뒤를 가젤이 따라가며 남은 부분을 이용하는 식이에요.
누는 겉으로 보면 멍한 표정이지만, 생각보다 이동 능력과 생존 전략이 뛰어난 동물입니다. 날렵하게 뛰지는 못해도 긴 거리를 꾸준히 걷고 뛰는 데 특화돼 있고, 후각과 청각이 발달해 넓은 평원에서 포식자를 비교적 잘 포착합니다. 게다가 ‘무리’라는 안전망도 있죠.
세렝게티를 움직이는 힘, 누떼의 대이동
누를 유명하게 만든 건 단연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를 가로지르는 ‘대이동(The Great Migration)’입니다. 대략 150만 마리 이상 누, 20만 마리 이상 얼룩말, 수십만 마리의 가젤이 비를 따라 초원을 돌면서 먹을 풀을 찾아 움직이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강줄기 같은 현상이지요.
이 대이동의 출발점은 보통 탄자니아 남부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보전구역에 있는 ‘은두투(Ndutu) 평원’입니다. 1~3월쯤 비가 내려 풀이 가장 영양가 있게 자라는 시기에, 누 암컷들이 이곳에 모여 짧은 기간 동안 집단으로 새끼를 낳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정기에는 하루에 8,000마리 정도의 새끼가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평원이 아기 누로 가득 차는 시기예요.
이후 비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초원의 초지가 바뀌고, 누떼도 서서히 중앙 세렝게티 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4~5월에는 긴 행렬을 이루며 서·중앙 세렝게티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이동이 이어지고, 6~7월에는 세렝게티 북쪽과 그 위의 케냐 마사이마라를 향해 올라가죠. 이 과정에서 포식자와의 숨막히는 눈치 싸움, 강을 건너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사파리의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7~9월쯤 마라 강(Mara River)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강 건너기’입니다. 누떼가 강둑 위에 잔뜩 몰려 서서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 마리가 먼저 뛰어내리면 뒤따라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이죠. 이때 강물 속 악어, 물살에 쓸려가는 새끼 누, 반쯤 돌아서 다시 올라오다가 혼란에 빠지는 개체까지, 자연 다큐에서 보던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흥미로운 건 이 대이동이 ‘정해진 길’을 외워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 무리에서 보통 나이가 많고 경험이 있는 암컷들이 우두머리처럼 앞쪽에서 이동 방향을 결정하고, 비 냄새와 초원의 푸르름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정확한 날짜, 위치가 딱 떨어지지 않고, 비 패턴에 따라 1~2주씩 앞당겨지거나 늦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누떼의 대이동은 ‘관광 상품’이 아니라 세렝게티를 살리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누가 한 곳에서만 풀을 다 먹어치우지 않고 넓은 영역을 순환하면서 풀을 골고루 뜯어주고, 배설물로 영양분을 돌려주기 때문에 초원이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탄자니아에서 누떼 대이동, 언제 가야 볼 수 있을까?
여행자 입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결국 이것이죠. “언제, 어디로 가야 누떼의 대이동을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누떼의 이동 자체는 1년 내내 계속되지만, 여행자가 보기 좋은 ‘포인트’ 시즌은 몇 구간으로 나뉩니다.
먼저, 1~3월 남부 세렝게티·은두투(Ndutu) 지역은 ‘출산 시즌’입니다. 이 시기에는 누떼가 넓게 이동하기보다는 비교적 좁은 평원에 몰려들어 새끼를 낳고 기르기 때문에, 엄청난 숫자의 누와 새끼 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자, 표범, 치타 같은 포식자들도 몰려드는 시기라 “대이동 + 포식자 액션”을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1~2월 은두투를 노리는 게 좋습니다.
4~6월은 누떼가 중앙 세렝게티 쪽으로 북상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일명 ‘길 위의 시즌’이라, 끝없이 이어진 행렬, 먼지구름 속에서 꾸준히 걸어가는 누들을 볼 수 있어요. 다만 강 건너기처럼 극적인 장면보다는, “진짜 방목되는 풀떼 같다”는 느낌의 이동 풍경을 보는 시즌에 가깝습니다.
7~9월은 북부 세렝게티와 마라 강 주변이 최고 성수기입니다. 마라 강을 건너는 그 유명한 장면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시기라, ‘점프하는 누’ 사진을 노리는 분들은 이때 북부 세렝게티(코가텐데, 라마이 지역 등)를 목표로 많이들 가죠. 다만 강 건너기는 날씨, 물 높이, 포식자 상황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혹은 며칠 동안 전혀 없을 수도 있어서, 일정에 여유를 두고 최소 3~4일은 머무는 걸 추천하는 편입니다.
10~12월쯤이 되면 다시 단비(short rains)가 남부·중부 세렝게티 쪽으로 내리기 시작합니다. 누떼는 북쪽 마라에서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다시 남부 평원으로 돌아가고, 이 과정이 다음 해 1월의 출산 시즌까지 이어지면서 1년짜리 대이동 사이클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누떼의 대이동을 본다”는 건 특정 한 달을 찍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장면(출산, 행렬 이동, 강 건너기)에 맞춰 시즌과 지역을 선택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정리해보면, 탄자니아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 1~3월: 남부 세렝게티·은두투, 출산 시즌, 새끼 누와 포식자 관찰에 최적.
- 4~6월: 중앙·서부 세렝게티, 이동 행렬과 비교적 한산한 사파리.
- 7~9월: 북부 세렝게티, 마라 강 건너기 가능성 최고 시즌.
- 10~12월: 북에서 남으로 돌아오는 이동, 녹색 초원의 풍경.
물론 비 패턴,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매년 조금씩 시기와 위치가 앞당겨지거나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 여행을 계획하실 때는, 출발 2~3개월 전에 현지 사파리 회사나 가이드에게 “올해 누떼 위치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한 번 확인해보시고 날짜와 숙소 지역을 조정하시면 훨씬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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