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선 위 까만 그림자들
요즘 겨울 저녁에 동탄, 오산, 수원, 평택 쪽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선 위로 까만 실루엣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는 걸 자주 보게 되죠. 멀리서 보면 하늘이 살짝 시커매질 정도라 순간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싶은 기분도 들고요. 실제로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요즘 왜 이렇게 까마귀가 많아졌냐”는 이야기가 꽤 자주 나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갑자기 까마귀가 미친 듯이 늘어났다기보다는 ‘겨울 철새’와 도시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특히 수원 / 화성 / 오산 / 평택 일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뉴스에 나올 정도로, 겨울마다 까마귀 친화(?) 도시로 자리 잡은 상태예요.

까마귀들, 사실은 겨울 철새입니다
먼저 정체부터 볼게요. 우리가 겨울 하늘에서 떼로 보는 새는, 보통 ‘떼까마귀’라고 부르는 종입니다. 생김새가 일반 큰부리까마귀랑 비슷해서 다 똑같아 보이지만, 이 친구들은 원래 시베리아, 몽골 같은 북쪽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한국으로 내려오는 전형적인 겨울 철새예요.
언론 보도와 연구 자료를 보면, 이 떼까마귀들은 대체로 11월쯤 한국으로 내려와서 이듬해 3월쯤 북쪽으로 돌아갑니다. 낮에는 주변 논, 밭, 습지에서 곤충, 낙곡, 작은 동물 등을 먹고, 해질 무렵이 되면 도심으로 날아와 전선, 가로수, 건물 주변에 다 같이 모여서 잠을 자죠.
수원은 예전부터 떼까마귀의 대표적인 월동지 중 하나였는데, 원래는 태화강(울산), 김제 들판, 울산 삼호대숲 같은 곳을 골고루 이용하다가, 2016년 이후로는 수원·화성·오산·평택 등 경기 남부 도심 쪽에 더 오래 머무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체감상 “어? 갑자기 까마귀가 폭증한 느낌인데?”라고 느끼시는 거죠. 실제로 기사에는 한때 수원 도심에만 수천 마리가 모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왜 하필 전선 위, 도심 한복판일까?
그렇다면 왜 얘네는 굳이 산속 숲이 아니라, 사람 많은 도심 전선 위에 모일까요?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먹이, 또 하나는 안전입니다.
떼까마귀는 낮에 논과 밭을 돌아다니며 곡식 낟알, 곤충, 작은 동물 등을 먹는데, 수원·화성·평택 쪽은 아직도 농경지가 꽤 많은 편이라 겨울 먹이 환경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친구들이 밤에는 숲이나 갈대밭에서 잠을 잤다면, 도시 확장, 신도시 개발로 숲과 갈대 군락지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포식자(맹금류)가 적은 도심 쪽으로 잠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현상은 중국 베이징, 미국 도시들에서도 관찰됩니다. 겨울철에 까마귀들이 도심 가로수, 빌딩 주변, 하천 인근에 대규모 집단 잠자리를 형성하면서,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음, 배설물 때문에 골치를 앓지만, 까마귀 입장에서는 ‘따뜻하고, 밝고, 포식자 적고, 나무와 구조물이 많은 안전지대’인 셈입니다. 전선도 마찬가지죠. 일정 간격으로 잘 정렬된 “까마귀 벤치” 같은 느낌이라 수천 마리가 앉아 있기에 좋습니다.
수원시는 실제로 2016년 이후 떼까마귀로 인한 민원이 급증하면서, 특정 구간을 ‘까마귀 집중 출몰 지역’으로 지정하고, 청소팀을 따로 운영하거나, 레이저, 소리 등으로 떼를 분산시키는 시범 사업까지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겨울의 풍경’으로 굳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산(烏山), 진짜 ‘까마귀 산’일까?
“오산의 한자명을 보면 까마귀 오(烏)를 써요. 실제 기록을 보면, 오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한자로 ‘자라 오(鰲)’ 자를 써서 ‘자라 산’이라는 뜻의 鰲山으로 표기되다가, 일제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과정에서 글자가 복잡하다는 이유와, 주변에 까마귀가 많았다는 이유를 들어, 새 까마귀 오(烏) 자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애초부터 이 지역에 까마귀가 많고, 산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까마귀 산’이라는 뜻의 烏山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꽤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산 향토 연구 쪽에서는 “오산 지역에 까마귀가 많고 산이 많아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이 지명 정체성과도 잘 맞는다고 보고 있고, 실제로 까마귀를 시조로 바꾸자는 제안도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어느 설이 100% 확정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지명에 ‘까마귀 오(烏)’가 쓰이고, 지금도 겨울이면 까마귀 떼가 도심 하늘을 뒤덮는 걸 보면, 괜히 사람 마음속에서 둘을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저도 겨울에 오산 근처를 지나다 전선 위 까마귀 떼를 보면, “아 그래서 여기가 오산(烏山)이구나” 하고 혼자 납득해버리게 되더라고요.
까마귀가 많으면 생기는 일들
그럼 까마귀가 이렇게 많아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체감적으로는 딱 세 가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소음, 배설물, 그리고 약간의 공포감(…)이죠. 실제로 수원이나 오산 주민 인터뷰를 보면, 해 질 무렵 엄청난 울음소리와, 다음 날 아침 차를 보니 하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 도시 위생 문제: 전선 아래 도로, 주차장, 인도에 배설물이 쌓여 악취, 미관 문제를 일으키고, 차량 세차 비용 증가
- 전력, 시설 피해: 전선 위에 수천 마리가 동시에 앉으면, 드물지만 변압기, 전선에 문제를 일으켜 정전이 발생한 사례도 보고
- 농작물 피해: 논과 밭에서는 떼까마귀가 낙곡만 먹기도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새싹이나 작물 피해가 발생해 유해조수 논의 발생
요즘은 큰부리까마귀(도심에서 1~2마리씩 보는 큰 녀석)들이 사람 가까이에서 둥지를 튼 뒤, 번식기(5~7월경)에 둥지 근처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도 늘어, 환경부에서 안전 가이드라인을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전선 위에 떼로 앉아 있는 겨울 떼까마귀의 경우, 사람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시끄럽고 지저분하다” 쪽의 피해가 훨씬 크고, 사람을 일부러 노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조금 이상하지만, 겨울 도시에 생긴 새로운 풍경
개인적으로는 겨울 저녁, 퇴근길에 까마귀 떼가 소용돌이치듯 하늘을 도는 장면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소름 돋고, 한편으로는 “와, 이 정도 스케일로 이동하는 생명들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같이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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