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소가 도구를 쓴다”는 기사를 보고 잠깐 멍해졌습니다. 소 하면 늘 느릿느릿하고, 그저 풀 뜯는 정도로만 떠올렸던 제 상상이 깨지는 순간이었어요.
오스트리아 산골의 특별한 소, 베로니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에 사는 암소 ‘베로니카’입니다. 베로니카는 좁은 축사 대신 비교적 복잡한 환경에서 사람과 함께 지내며, 주변 물건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조건에서 살고 있었죠. 어느 날 주인이 보니, 베로니카가 막대기나 빗자루를 그냥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집어 들어 자기 몸을 긁고 있는 겁니다. 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연구진에게 전달되면서 “이건 진짜 도구 사용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연구팀은 데크 브러시를 여러 각도로 두고, 베로니카가 어떻게 다루는지 반복해서 관찰했다고 합니다. 베로니카는 긴 혀를 이용해 브러시를 들어 올리고, 보이지도 않는 등 부위에 정확히 가져가 긁었어요. 더 흥미로운 건, 브러시 솔 부분은 두꺼운 등 쪽에, 나무 손잡이 부분은 배나 유방처럼 민감한 부위를 누르거나 문지를 때 쓰는 식으로 “한 도구를 용도에 따라 다르게” 썼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소에서 보고된 최초의 ‘유연한 다목적 도구 사용’ 사례로 보았고, 학술지에 정식으로 발표했죠.
저는 이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도구 사용이라 하면 늘 손이 자유로운 영장류만 떠올렸는데, 소는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부위인 혀와 입을 써서 같은 수준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었던 거니까요. “손가락이 있어야 도구를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더라고요.
도구 사용이 말해주는 것들
동물행동학에서 도구 사용은 “외부 물체를 조작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행동” 정도로 정의합니다. 단순히 몸을 문지르는 게 아니라, 집어 들고, 위치를 조절하고, 상황에 따라 쓰는 방식을 바꾸는 행위가 포함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베로니카의 행동은 이 정의를 꽤 잘 만족합니다. 가려운 부위에 따라 브러시의 어느 쪽을 쓸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소가 생각보다 훨씬 세밀한 신체 인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니까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환경”입니다. 대부분의 소는 평생을 비슷한 구조의 축사 안에서 보내고, 다양한 물체를 만져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베로니카는 나이가 많고, 사람과 교류가 많고, 주변에 이런저런 물건이 널려 있는 환경에서 살았죠. 어쩌면 소들의 잠재적인 인지 능력은 원래부터 존재했는데, 우리가 그런 능력이 드러날 만한 조건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촉매 공정에서 조건을 조금만 바꾸면 새로운 반응 경로가 열리는 것처럼요.
소만이 아니다, 도구 쓰는 동물 친구들
물론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다듬어 흰개미를 꺼내 먹고, 돌로 견과류를 깨며, 잎을 말아 물을 떠먹는 ‘잎 스펀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까마귀는 나뭇잎을 자르고 구부려 갈고리 모양 도구를 만든 뒤, 틈새에 넣어 벌레를 꺼냅니다. 어떤 개체는 금속 철사를 줘도 비슷한 형태로 구부려 사용하는 실험 결과도 있죠.
바다수달은 배 위에 올린 돌을 망치처럼 써서 조개껍데기를 깨고, 돌고래는 코 끝에 해면을 끼우고 모래 바닥을 뒤지며 상처를 줄여요. 심지어 코코넛 문어는 코코넛 껍질이나 큰 조개껍데기를 두 팔로 끌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조립해 임시 방패나 집처럼 쓰기도 하죠. 이렇게 보면, 도구 사용은 다양한 환경에서 진화적으로 여러 번 등장한 전략입니다.
도구를 쓰는 소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연구자들도 말하듯, 베로니카 한 마리가 “모든 소가 이렇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분명해진 건, 최소한 일부 소는 우리가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환경을 인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축을 생산성 단위로만 보던 관점에서 한 발 물러나, 이들의 감각과 생각을 조금 더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동물, 자연, 환경 이야기를 자주 쓰다 보니, 이런 뉴스는 반갑기도 하고 좀 묵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드는 우유, 고기 뒤에, 빗자루를 집어 들어 스스로 가려움을 해결하던 소 한 마리의 모습이 겹쳐지거든요. 소가 빗자루로 등을 긁어내린 건, 단순한 가려움뿐 아니라,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오래된 편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국내 농장에서도, 소들이 마음껏 장난치고 탐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 또 다른 ‘베로니카’들이 등장하길 조용히 기대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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