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현대차 아틀라스 로봇 뉴스를 보다 보면서 러다이트 기계파괴운동이 자연스럽게 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입장도 발표되며, 노동자가 회사에게 “이 기술, 함부로 쓰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자꾸 마음에 남습니다.
현대차 아틀라스, 누가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
지금 현대차 노동조합이 이야기하는 건 “노사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현장에 들여오는 건 안 된다”에 가깝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인간형 로봇이 생산라인에 투입될 경우 고용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노사 합의 없는 신기술 도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죠.
반대로 회사는 아틀라스를 비롯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스마트팩토리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 등 해외 생산거점, 로봇 생산 기지를 중심으로 2028년 이후 단계적 투입 계획을 그리고 있고요.
저는 이 상황을 “기술 도입의 방향과 속도”를 두고 벌이는 줄다리기라고 느꼈습니다. 회사는 비용, 생산성, 글로벌 경쟁을 보고 브레이크를 늦게 밟으려 하고, 노조는 고용, 노동시간, 전환 기회를 지키기 위해 브레이크를 좀 더 일찍 밟으려 하는 거죠.
그럼 인력거 기사는 자동차 금지 주장해도 될까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비유가 바로 이거죠. “인력거 운전 기사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면 자동차 생산 금지를 주장해도 되는가?” 직관적으로는 대부분 “그건 좀 오버다”라고 느낄 겁니다. 실제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차, 인력거, 마부 일자리는 크게 줄었지만, 역사는 자동차 전면 금지 쪽으로는 흘러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러니 어떤 기술이든 다 받아들여야 한다”로 가는 것도 무책임해 보입니다. 인력거를 둘러싼 논쟁만 봐도, 식민 도시에서의 불평등, 저임금 고강도 노동, 도시 공간의 재편 같은 복잡한 문제가 함께 얽혀 있었거든요. 기술 도입은 항상 누군가의 존엄, 안전, 생계를 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나눠보게 됩니다. 기술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동차 자체를 없애자”라고 주장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이동권, 편리함, 사회 전체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요구에 가깝죠. 반대로 “자동차가 도입될 때, 교통안전, 노동 전환, 도시 설계 같은 문제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건 정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러다이트가 우리에게 남긴 ‘선’의 위치
러다이트들도 사실은 “모든 기계 반대”는 아니었다는 연구가 꽤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생활임금 구조를 무너뜨리고, 저임금·아동 노동으로 대체하는 특정 기계를 주로 공격했습니다. 숙련을 완전히 무시하고, 공동체 규칙을 깨는 방식의 기계 도입에 반발한 거죠.
일부 기록을 보면, 러다이트들 사이에서도 “새 기계에 세금을 매겨서 노동자 지원에 쓰자”, “도입 속도를 조절하자”는 식의 제안이 오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현대 용어로 치면 규제, 사회 안전망, 전환 지원 패키지에 가까운 발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선을 그어보게 됩니다. 기술 자체를 없애자는 요구는, 사회 전체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잘라내는 쪽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기술 도입 방식, 속도, 이익·비용 배분을 두고 정치적·사회적 논쟁을 여는 건, 오히려 건강한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현대차 아틀라스도 마찬가지로, “아틀라스를 영원히 쓰지 말자”보다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떤 업무에, 어떤 안전 기준과 고용 보장 장치를 두고 쓸 것인가”를 두고 싸우는 게 현실적인 방향이겠죠.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타협점

저는 제조업 회사에 다니면서 자동화 설비가 들어올 때마다 비슷한 풍경을 봅니다. 누군가는 “이거 들어오면 우리 인원 줄겠네”라고 걱정하고, 또 누군가는 “그래도 위험한 작업은 이제 기계가 하는 게 낫지 않냐”라고 말하죠. 사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애매하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적절한 고려 없이 “경쟁력, 효율”만 내세워 로봇을 들여오면, 결국 200년 전 러다이트가 던졌던 질문이 거의 같은 형태로 되돌아오는 셈이 될 겁니다. “이 기술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왜 항상 가장 약한 고리가 가장 큰 비용을 내야 하느냐” 같은 질문들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이런 기술 발전 없이 회사의 경쟁력은 도태되고 우리나라는 더 살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런 다각도의 논의와 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면, 저는 기계를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에게 넘기고, 사람은 더 사람다운 일을 해보자”라는 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제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약속처럼 느껴질 것 같거든요.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되, 속도는 조절하고 싶다

결국 노동자가 회사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기술 도입의 방향과 룰을 함께 정하자”라는 데까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을 인력거만 달리던 시절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고, 사실 그렇게까지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그 비용을 함께 나누자”라고 말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러다이트가 망치로 물었던 질문을, 우리는 노조, 제도, 투표, 소비, 그리고 서로의 대화를 통해 조금 덜 아프게 다시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틀라스 같은 로봇을 보면서도, 저는 여전히 신기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다만 이제는 “기계를 부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규칙과 마음가짐으로 이 기계와 함께 살 것이냐”의 문제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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