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알록달록한 색옷을 입습니다. 붉고 노랗게 번지는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색다릅니다. 예전에 한국에 수년정도 살던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여쭌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치안 같은 답변대신 단풍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했던 풍경이 누군가에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일 수 있더라구요.
단풍은 나무의 마지막 준비
단풍은 단순하게 잎의 색이 변하는 게 아닙니다. 이는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잎 내부의 엽록소 때문에 푸른색을 보입니다. 엽록소는 햇빛을 받아 에너지를 만들죠. 하지만 가을이 되면 낮은 짧아지고 온도도 떨어집니다. 나무는 이쯤부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엽록소 생산을 멈춥니다.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숨어 있던 카로티노이드(노란색), 안토시아닌(붉은색) 색소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단풍의 색은 바로 그 과정입니다. 단풍은 나무가 겨울을 버티기 위해 사용하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작별 인사입니다.
외국인이 말한 한국의 단풍
그 외국인의 답변을 들은 날, 저는 잠시 놀랐습니다. 너무 익숙했기에, 한 번도 특이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풍경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가을이면 이런 소중한 일상에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게 됩니다. 은행잎이 떨어지는 모습과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이 고맙더라구요. 우리에겐 일상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예술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익숙함의 소중함을 다시 깨닳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산다는것은 매해 가을마다 새로운 색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단풍은 과학이자 예술
단풍의 색은 단순히 온도 때문은 아닙니다. 낮과 밤의 온도 차와 햇빛의 양 그리고 공기의 습도까지 모두 단풍의 색을 바꾼다고 합니다. 낮엔 따뜻하고 밤엔 차가운 날이면, 잎의 색소가 보다 선명하게 남습니다. 그렇게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래서 내륙이나 산지처럼 일교차가 큰 지역에 가면 단풍이 더 진한 색을 띠는 거죠. 이건 마치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을 한정판 그림같네요.
따라서, 단풍은 매년 같은 나무에서 같은 위치에서 피지만 그 색은 매번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단풍 명소로는 설악산과 내장산이 있습니다. 설악산은 강렬하고, 내장산은 부드럽습니다. 그 차이마저도 계절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외국인이 말했던 그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됩니다. 단풍은 색이 아니라 나무의 생존 방식이며 자연의 지혜이고 시간의 흔적입니다. 그 사실이 올해 다시 찾아온 가을이 조금 더 고마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