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팽이라는 생물에 대해 떠올리면 ‘느리다’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외에도 달팽이는 놀랍도록 독특한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팽이는 오래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생활 리듬은 사람과 많이 다릅니다. 달팽이는 낮과 밤으로 나뉜 24시간 리듬보다는, 2~3일 단위로 활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자기만의 슬로우 모드를 즐기고 있습니다.
느릿느릿, 하지만 잠은 과감하게
과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달팽이는 한 번에 10~20분 정도의 짧은 잠을 여러 번 자고, 그 사이사이에 긴 활동 시간이 섞여 있는 형태를 보입니다. 짧게 자고, 길게 돌아다니고, 다시 짧게 자는 패턴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처럼 밤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명확한 패턴을 기대하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달팽이의 하루는 우리 기준의 하루와는 다른 리듬으로 흘러갑니다.
달팽이가 진짜 오래 자는 이유
달팽이의 수면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몇 년씩 잔다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과장도 섞여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달팽이는 환경 조건이 나빠졌을 때 ‘동면(hibernation)’과 ‘건면(estivation)’이라는 특수한 휴면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동면은 주로 추운 겨울에, 건면은 너무 덥고 건조한 여름에 나타나는 장기 휴식 모드입니다.
이때 달팽이는 껍데기 입구를 두꺼운 점액 막으로 봉해 버립니다. 그리고 심장 박동, 호흡, 신진대사 속도를 극단적으로 떨어뜨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합니다. 겉에서 보면 거의 돌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죽은 것 같다” 싶을 정도지만 내부에서는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활동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휴면 상태로 들어가면 몇 주, 몇 달을 버티는 것도 가능하고, 극단적인 사례로는 2~3년 가까이 휴면 상태였던 기록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잠으로 버티는 생존 전략, ‘에너지 절약 모드’
달팽이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잠에 가까운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몸 구조와 생리 작용이 철저하게 ‘에너지 절약’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기어 다니고, 외부 온도에 몸을 맡기는 변온 동물이기 때문에, 굳이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면 최대한 가만히 있으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편을 택합니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하면, 괜히 돌아다니다 굶어 죽거나 마르기보다는 껍데기 속에서 버티는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건 ‘대사율을 극단적으로 낮춰 생존 기간을 늘리는 전략’입니다. 신진대사가 떨어지면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의 양도 줄어들고, 체내 노폐물 생성도 감소합니다. 결국 달팽이에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위험한 계절을 통째로 건너뛰게 해주는 타임캡슐”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느린 동물의 긴 잠이 주는 힌트
달팽이의 수면을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어딘가 이상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팽이 입장에서 보면, 이 느리지만 깊고 오래가는 잠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생존 도구입니다.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할 땐 아주 과감하게 긴 휴면에 들어가고, 다시 환경이 좋아지면 슬그머니 깨어나 새로운 계절을 시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작은 달팽이 한 마리 속에 이렇게 복잡한 수면 전략과 생리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길가에서 만나는 달팽이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저 친구는 지금 에너지 절약 모드일까, 아니면 방금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걸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죠. 느릿느릿한 그들의 속도 속에는, 사실 꽤 매력적인 자연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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