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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100만 배럴 유조선은 어떻게 나왔을까

자연과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관찰자 2026. 4. 20. 22:16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100만 배럴급 유조선” 이야기가 화두죠.

이 배의 이름은 몰타 선적 수에즈맥스급 유조선 ‘오데사(Odessa)호’입니다.

수에즈맥스급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대형 유조선입니다.
원유 약 100만 배럴 정도를 실을 수 있는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약 100만 배럴: 우리나라 하루 원유 소비량(약 280만 배럴)의 3분의 1 수준
  • 선적지: 아랍에미리트(UAE)
  • 도착지: 충남 서산시 대산항, HD현대오일뱅크.
  • 도착 예정일: 2026년 5월 8일 전후

기사들을 보면
“호르무즈 봉쇄 이후, 페르시아만 안쪽에서 원유를 싣고
한국으로 향하는 첫 유조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배가 언제, 어떤 타이밍에 그 복잡한 바다를 빠져나왔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호르무즈를 뚫었다”는 말, 실제로는 ‘타이밍 싸움’

뉴스 제목에는 “호르무즈를 뚫었다”라는 표현이 많이 붙지만,
‘무력 충돌을 무릅쓰고 돌파한 배’라기보다는 “재봉쇄 전 타이밍에 통과한 배”입니다.

  •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
  • 그 이후 페르시아만 쪽에 우리 선박 20여 척이 고립되고,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태가 길어짐
  • 이란의 태도는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통과가 어렵다”는 입장으로 여러 차례 보도
  • 그런 와중에 오데사호는 이란 군부의 ‘재봉쇄’ 강화 조치 이전에 이미 호르무즈를 지나 나와, 한국행 항해

동아일보는 “재봉쇄 이전 가까스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 한 척이 원유 100만 배럴을 싣고 한국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도 “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해협 안쪽에서 원유를 싣고 한국으로 향하는 첫 유조선”이라고 정리했고요.

그래서 이 배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한 줄로 정리해 보자면,

총알이 빗발치는 사이를 억지로 뚫고 나온 ‘돌파선’이라기보다는,
봉쇄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에 통과에 성공한 ‘타이밍의 배’

개인적으로는, “호르무즈를 뚫었다”는 자극적인 표현보다
“호르무즈가 닫히기 직전 나온 마지막 통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긴장 상황을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홍해 우회했다는 뉴스는 또 뭐지?

많은 분들이 가장 헷갈려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어디서는 호르무즈를 뚫었다고 하고, 또 어디서는 홍해로 우회했다고 하니까요.”

실제로는 서로 다른 두 사건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겼죠.

1) 오데사호 (100만 배럴, 호르무즈 통과)

  •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대산항으로 향하는 수에즈맥스급 유조선
  • HD현대오일뱅크의 기존 계약 물량으로, 5월 8일 전후 입항 예정

2) 홍해 우회 VLCC (호르무즈 회피, 홍해 통과)

  • 4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 대신 홍해를 통해 우리나라로 향한 한국 선박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처음으로 홍해 우회로를 통해 들어오는 원유 운송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정부 정책브리핑 자료를 보면, 이 홍해 우회 선박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처음 우회로인 홍해를 통해 국내로 원유를 운송하는 사례”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홍해 항해 동안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과 항해 안전 정보 제공, 선박과의 실시간 소통 채널 운영을 통해 안전을 지원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언론 기사만 헤드라인으로 훑어보면,

  • “호르무즈를 뚫은 첫 한국행 유조선…”
  • “호르무즈 안 되면 홍해로… 한국 유조선 우회로 뚫었다”

이렇게 두 문장이 거의 붙어 나오다 보니,
‘호르무즈를 뚫은 100만 배럴 유조선 = 홍해로 우회한 유조선’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시나리오, 다른 항로를 가진 별개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은 왜 다른 배들은 호르무즈를 못 지나가나요?

여기서부터는 “한 척의 예외”와 “전체 흐름”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데사호가 통과했다는 소식이 나오지만,
모든 선박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페르시아만 안쪽에는 국내 선박 20여 척이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박 추적 서비스와 업계 인터뷰를 통해 집계한 결과인데, 이 중 상당수가 원유·정제품 운반선입니다.

이란 측 발언도 상황을 무겁게 만듭니다.

  •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어렵다”고 밝혔고,
  • “전쟁 이후에도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전해졌습니다.

국내 기사들을 보면 선사들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 외교부, 해양수산부에서 뚜렷한 통과 지침이 나오기 전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감행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합니다.
  • 천억 원이 넘는 선박과 화물, 그리고 선원 안전을 동시에 걸고 ‘모험’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죠.

정리해 보면,

  • 오데사호는 “막히기 직전, 혹은 봉쇄와 재봉쇄 사이의 짧은 틈”을 이용해 통과에 성공한 예외적인 사례.
  • 지금 대부분의 선박은 이란의 통제, 미국·이스라엘과의 긴장, 우리 정부의 안전 우선 기조 때문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데사호라는 하나의 성공 사례가 오히려
“나머지 선박들은 아직도 갇혀 있다”는 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부와 정유사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원유 수급을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플랜 B’들이 동시에 돌아가는 중입니다.

언론과 정부 발표를 종합해 보면, 크게 이런 수단들이 언급됩니다.

  • 호르무즈를 안 지나는 산유국(미국, 서아프리카, 북해 등) 물량 비중 확대
  • 국제에너지기구(IEA) 공동 비축유 방출 논의 및 국내 비축유 활용 검토
  • 사우디 얀부항 등 홍해 연안 항구를 활용한 우회 수송, 즉 홍해 경유 루트 확대
  • 기존에 이미 계약돼 있던 물량(이번 100만 배럴처럼)을 최대한 안전하게 들여오는 작업

정부 정책 브리핑에서도 “홍해 우회 운송을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대비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KBS·MBC 보도에서는 해수부가 홍해를 항해하는 선박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 안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당장 내일 생산을 멈추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나 비싼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공급선을 재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환경·에너지 이야기를 할 때 늘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보는 리터당 몇 원, 몇 십 원의 차이 뒤에는
호르무즈와 홍해, 페르시아만과 사우디, 그리고 수많은 선박과 선원들의 선택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 한 방울 뒤에 숨은 풍경들

이번 뉴스를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지도를 한 번 쭉 훑어보시면,
유조선 한 척의 항로가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새삼 느끼시게 될 것 같습니다.

  • 한쪽 끝에는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군사적 긴장이 있고,
  • 다른 한쪽에는 우리나라 정유사의 설비 가동률, 주유소 가격, 그리고 일상적인 출퇴근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 그 사이에는, 오늘도 바다 위에서 레이더와 뉴스, 정부 공지를 동시에 보며 항로를 결정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서 있고요.

뉴스 속 “100만 배럴 유조선”이 조금은 입체적으로 느껴지셨다면 좋겠습니다.

호르무즈를 “뚫었다”는 한 줄의 문장 뒤에,
사실은 타이밍, 외교, 안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점을 함께 떠올려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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