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이익을 이렇게까지 통제해도 될까, 시장경제에 대한 고민

요즘 석유 최고가격제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사기업의 가격과 이익을 정부가 제한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입니다.
정유산업이 기초 에너지 산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주장도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그대로 확장하면, 조금 이상한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서민이 많이 쓰는 필수재”라는 이유로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대표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통신, 식품 등도 모두 대다수의 서민이 사용하며
국가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싸게 팔고, 해외에서는 비싸게 팔라는 구조는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격 차이를 누가 부담하고, 그 손실을 누가 메우는지는 결국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정유사와 한국전력은 닮은 듯 다릅니다
정유산업은 에너지 공급의 기초라는 점에서 한국전력과 닮은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공기업이고, 정유사는 사기업이라는 점입니다.
공기업은 주인이 국가이고, 그 말은 곧 국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기업의 요금과 이익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명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재무 구조가 망가지면 결국 또 다른 부담이 돌아오지만요.
반면 정유사는 명백한 사기업입니다.
주주가 있고, 민간 자본이 투자된 회사입니다.
이익과 손실을 감수하는 주체도 결국 민간입니다.
그런데 사기업에 대해 “기초 에너지 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 상한을 정하고, 수출 물량을 제한하고, 국내 공급량을 의무화한다면,
이것은 단순한 공공성 확보를 넘어서 사기업의 이익 구조를 직접 통제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손실은 누가 메워야 할까요
정유사에 공적 목적을 강요했다면, 그만큼의 손실은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해 주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미 정부는 여러 차례, 기회이익이나 기회손실까지 모두 보전해 줄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즉, 실제 원가 상승분 등 일부 손실은 보전하겠지만,
“원래 더 벌 수 있었던 이익”까지 모두 세금으로 메워 주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남는 건 이 구조입니다.
가격은 정부가 상한을 정해 통제하고, 수출과 국내 공급량도 일정 수준 통제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당 부분의 손실과 기회비용은 사기업이 알아서 안고 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정말 서민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어디를 건드려야 할까요
정부 설명에서는 늘 “서민 부담을 덜기 위해”라는 말이 앞에 붙습니다.
물론 서민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말 서민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비용 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를 먼저 건드려야 합니다.
기름값을 뜯어보면, 상당 부분이 세금입니다.
유류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겹겹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가장 단순한 처방은 사실 명확합니다.
유류세를 낮추면,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마주하는 가격은 곧바로 내려갑니다.
예를 들어, 고유가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몇 조 원의 추경을 논의하면서,
동시에 유류세는 그대로 두고 정유사 가격과 이익만 붙잡는 그림은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유류세를 일정 부분 줄이는 대신,
그만큼의 재정을 고유가 피해 지원금처럼 쓰는 방식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20조원이 넘는 재정을 새로 편성해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것보다,
유류세 자체를 조정하는 편이 더 근본적인 해법입니다.
시장경제에서 정부 개입의 경계선
그래서 저는 이번 최고가격제와 정유사 논란을 보면서,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서민의 기름값 부담을 줄이고 싶었다면, 세금 구조와 가격 구조를
함께 손보는 접근이 먼저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기업의 가격과 이익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시장참여자들은 어떤 신호를 받게 될까.
이런 식의 개입이 계속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이익이 통제될 수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장기적으로는 투자와 공급이 위축되고,
결국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결과를 만들 위험도 커집니다.
시장경제라는 것은 완전히 손을 떼고 방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부터는 원칙을 지킬 것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석유 최고가격제 논란이,
그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한 번 더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에너지 가격 문제를 이유로 사기업의 이익 구조를 쉽게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산업들로 같은 논리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