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는 게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 게의 단단한 몸이 가진 진화적 강점
어제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를 봤어요. 몇년 전에 책도 읽었었는데 아주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요.
책을 읽을때 신기한 점은 바로 외계인 로키가 “게처럼” 껍질을 벗어내는, 일종의 탈피 장면이었죠.
“아니, 왜 굳이 외계인을 게처럼, 그것도 탈피까지 하는 존재로 설정했을까?”
게는 실제 지구 생태계에서도 꽤 유능한 바디플랜으로 인정받는 존재거든요.
단단한 외골격, 낮은 무게 중심, 옆으로 빠르게 미끄러지는 보행, 다양한 서식지 적응력까지요.
그래서 오늘은, 로키의 “게 같은 몸”을 시작점으로,
게라는 동물이 진화적으로 얼마나 효율적인 설계인지,
그리고 이게 왜 SF 속 외계인 디자인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로키의 고향, 에리드에서 ‘게 같은 몸’이 필요한 이유
먼저 로키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볼게요.
로키의 종인 에리디안이 사는 행성 ‘에리드(Erid)’는 설정부터가 꽤 살벌합니다.
지구보다 2배 정도 강한 중력, 고온·고압 환경, 물 대신 암모니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기.
빛은 거의 없고, 우리가 상상하는 “쾌적한 행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죠.
이런 환경에서 인간처럼 내골격에 말랑한 살을
노출하고 사는 건 굉장한 리스크예요.
압력, 열, 충격, 화학적 공격에 너무 취약하니까요.

반대로 로키는 어떻게 생겼냐 하면, 관련 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 다섯 개의 다리가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구조
- 몸 전체를 감싸는 바위 같은 두꺼운 외골격
- 고압·고온, 심지어 방사능 수준에도 버티는 단단한 껍질
- 몸통은 낮게 깔리고, 다리들이 전체 무게를 분산해 지탱
이걸 딱 한 줄로 요약하면, “고중력·고압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바위 게 같은 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중력에서는 키가 높고 하늘로 쭉 뻗은 생명체보다,
몸이 낮고 넓게 퍼져 있으며, 여러 다리로 지면을 꽉 잡는 구조가 훨씬 안정적이거든요.
그래서 작가가 굳이 로키를 이런 형태로 만든 건,
“게가 귀여워서”라기보다는,
에리드 같은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물리·생물학적 조건을 상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렴한 디자인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게처럼 탈피하는 외계인, 로키
책에서는 로키가 일종의 “탈피”를 하는 듯한 장면도 등장해요.
오래 살아온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껍질로 갈아입는 모습이 꽤 인상적으로 묘사되죠.
이건 지구 갑각류의 탈피 메커니즘과 거의 동일합니다.
게, 가재, 새우 같은 동물들은 단단한 외골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번 굳어버린 껍질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몸이 성장하려면, 기존 껍질을 통째로 벗어서 버리고,
그 사이에 말랑한 새 껍질을 크게 부풀린 다음,
다시 단단하게 굳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엄청 위험하다는 거예요.
탈피 직후에는 갑각이 아직 부드러워서,
포식자, 충격, 환경 변화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각류가 이 “리스크 높은 전략”을 유지해왔다는 건,
평소에 단단한 외골격이 주는 방어적 이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죠.
에리드 같은 행성 환경을 떠올려 보면, 로키 종이
굳이 탈피까지 감수하면서 외골격을 유지하는 설정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생깁니다.
극단적인 고압·고온·화학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을 통째로 감싸는 단단한 갑옷이,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을 만큼
큰 이득을 주는 셈이니까요.
게라는 동물이 가진 바디플랜의 힘
이제 시선을 다시 지구로 돌려볼게요. 로키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게”라는 동물이 생각날 수밖에 없잖아요.
과학자들이 “게 같은 몸으로 진화하는 현상”에 따로 이름까지 붙여 부를 정도입니다.
바로 ‘게화(carcinization)’라는 개념이에요.
게화는 간단히 말하면, 원래 게가 아니던 십각류 갑각류가,
진화 과정에서 자꾸 게 비슷한 형태로 수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 같은 몸”은 대략 이런 특징들을 가져요.
- 넓고 납작한 등딱지(갑각)
- 몸 아래로 접혀 들어간 짧은 배
- 단단하게 석회화된 외골격
- 네 쌍의 보행다리와 한 쌍의 집게발
- 전체적으로 낮은 키, 넓은 몸, 안정적인 무게 중심
이 조합이 특히 얕은 바다, 해저 바닥, 연안, 갯벌 환경에서 굉장히 효율적이라,
게와 친척도 아닌 계통에서조차 “게 비슷한 바디플랜”으로
여러 번 수렴 진화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게의 바디플랜은 이런 강점을 지닙니다.
- 안정성: 낮은 무게 중심과 넓은 몸으로 파도, 조류, 포식자 공격에도 잘 안 뒤집힘
- 방어력: 단단한 외골격이 내부 기관을 철저히 보호
- 기동성: 옆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방향 전환도 재빨리 가능
- 다양한 먹이 전략: 바닥의 유기물, 조개, 작은 무척추동물, 해조류까지 폭넓게 섭취 가능
이 정도면 “바닥에서 살아가는 생물들 사이에서 꽤 성공한 설계”라고 말해도 괜찮겠죠.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진화는 결국 게가 된다” 같은 농담 섞인 밈도 돌고요.
게화 밈과 로키, 의도치 않은 오마주 같았던 순간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다가,
로키의 묘사를 볼 때마다 이 게화(carcinization) 밈이 계속 떠올랐어요.
지구에서는 해양 바닥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 여러 번 “게 같은 몸”으로 수렴했고,
그게 지금 우리가 아는 각종 게와 게 비슷한 친구들을 만든 셈이잖아요.
그리고 소설 속 우주 반대편에서는,
고중력·고압·암모니아의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게 같은 존재”가 진화해 문명까지 만든 거고요.
물론 작가가 “게화 논문을 정독하고 로키를 디자인했다”는 식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왠지 모르게, 진화가 같은 물리 법칙 아래에서 비슷한 해답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외계인은 외계인인데, 완전히 낯선 존재라기보다는,
어딘가 익숙한, “어, 이 바디플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은 그 감각 있잖아요.
저는 그게 꽤 좋더라고요. SF인데, 생물공학·진화 이야기까지 같이 읽히는 느낌이라서요.
로키는 ‘상위종의 최종 진화형’일까?
마지막으로, 한 번쯤 떠올려볼 수 있는 질문이 있어요.
“게가 그렇게 유능한 설계라면, 로키 같은 외계 고등 문명이
게를 닮은 것도 일종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봐야 할까?”라는 거죠.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최종 진화형”, “상위종” 같은 표현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진화는 위아래가 있는 사다리가 아니라, 각자 처한 환경에 맞게 가지를 뻗어나가는 과정이라서요.
게의 바디플랜이 강조하는 건 “해저 바닥 환경에서의 성공”이고,
로키의 바디플랜이 강조하는 건 “에리드라는 극악의 행성에서의 생존 안정성”에 더 가깝습니다.
“게가 우주의 최종 진화형이라 외계인도 결국 게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보기보다는,
“극한 환경에서 버티는 몸을 상상했더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아는 게와 닮은 형태로 수렴했다”고
보는 편이 과학적으로는 더 자연스러워요.
그 덕분에 우리는, SF 소설을 읽으면서도,
진화의 수렴, 갑각류의 외골격, 환경과 바디플랜의 관계 같은
꽤 진지한 과학 이야기까지 같이 떠올릴 수 있게 되었고요.
그게 로키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무리 – 게와 로키 사이 어딘가에서
정리하자면, 로키가 게처럼 보이는 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에리드라는 행성 환경 속에서 “단단하고 낮고 안정적인 몸”이
얼마나 유리한지를 잘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구 해저에서 비슷한 압력과 환경 속에 적응해 온 게들의 진화사를 떠올리게 하죠.
언젠가 실제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면, 그 모습이 로키처럼,
혹은 우리가 아는 게와 전혀 다른 방향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 몸 역시 그들 행성의 물리 법칙과 환경이 고른 “최적화된 설계”일 거라는 점입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바닷가의 작은 게 한 마리가 조금 더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