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역 한복판에서 만난 양: 검정얼굴 하얀털! 발레 블랙노즈(Valais Blacknose)
엊그제 신사역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이었습니다.
신사역 바로 앞 길에서, 갑자기 커다란 ‘양’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갔어요.
하얀 솜뭉치 같은 털에, 피부는 까맣고, 귀와 얼굴 주변도 까맣게 물든 그 모습이 정말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친구들도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어?! 뭐야 저거?” 하면서 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죠.
집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양의 정체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위스 원산의 발레 블랙노즈(Valais Blacknose)였습니다.
알프스에서 내려온, 인형 같은 양
발레 블랙노즈는 스위스 발레(Valais) 주 알프스 산지에서 온 토종 양입니다.
알프스의 험한 산악 환경에 적응한 품종이라 생각보다 체구도 탄탄하고, 실제로 보면 꽤 큰 편이에요.
이 양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얼굴입니다.
코부터 눈 주변, 귀까지 온통 검게 물들어 있고, 앞다리와 뒷다리 관절, 발목 부분에는 마치 검은 부츠를 신은 것 같은 무늬가 들어가 있어요.
몸 전체는 길고 컬이 살아 있는 새하얀 양털로 덮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진짜 인형인지, 살아 있는 양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숫양과 암양 모두 나선형으로 말린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뿔까지 더해지면
“알프스에서 내려온 판타지 게임 속 캐릭터 같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죠.
원래는 고기와 양모를 위한 가축이었지만, 요즘에는 독특한 외모 덕분에
애완용, 농장 체험용, 펫팅 주의 마스코트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키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양을 우리나라에서도 키울 수 있을까요?
해외에서는 이미 뉴질랜드, 영국, 미국 등지로 발레 블랙노즈가 수출되어
개인 농장이나 체험 농장, 라이프스타일용 가축으로 키우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몇몇 해외 브리더들은 한국과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발레 블랙노즈를 분양하거나 수출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고,
한국 시장을 ‘라이프스타일·펫팅 주·애완 및 번식용’ 수요가 있는 곳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금지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 수입 절차와 검역, 방역 기준만 지킨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발레 블랙노즈를 사육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장벽이 큽니다.
- 아직 매우 희귀하고 고가인 품종이라, 구입 비용이 상당히 높다는 점
- 수입·검역 과정에서 드는 비용과 시간
- 넓은 공간, 목장·축사 등 가축 사육에 적합한 환경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아파트에서 반려견 키우듯이 “반려 양”을 들이는 그림보다는,
외곽 농장이나 체험 농장, 프리미엄 펫팅 주에서 운영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에요.
월레스와 그로밋 속 그 양이 떠오르다
발레 블랙노즈를 처음 봤을 때,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로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에 등장하는 양, ‘숀(Shaun)’이었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 속 숀도 하얀 털에 검은 얼굴과 귀를 가진 모습으로 등장하죠.
작품 안에서 정확한 품종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검은 얼굴과 하얀 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현실에서 숀을 찾으면 발레 블랙노즈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잠깐 스친, 비현실적인 장면
바쁜 약속길 한복판에서, 커다란 양과 눈이 마주치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요.
신사역을 걷다가 스위스 알프스에서나 볼 법한 양을 마주쳤던 그 순간은,
요즘 들어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알프스의 초원 위를 느긋하게 거니는 발레 블랙노즈 무리를
그들의 고향에서 직접 보고 싶어졌어요.
그때는 오늘처럼 깜짝 놀라기보다는, 충분히 놀라고 감탄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