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남자보다 여자를 더 무서워하는 과학적 이야기
공원 벤치 근처에서 모이를 쪼던 비둘기가, 가까이 가면 푸드덕 날아오르는 모습은 익숙하실 거예요.
그런데 새들이 다가오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에게 더 일찍 도망간다고 해요.
처음 읽었을 때는 조금 의아했는데, 연구팀조차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새가 날아오르는 거리, '비행 개시 거리'
야생동물 연구에는 '비행 개시 거리(FID)'라는 지표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가갈 때 새가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거리를 말해요.
이 거리가 길수록 새가 사람을 더 위험하게 느낀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반대로 짧으면 그만큼 사람을 덜 경계한다는 의미고요.
도시 새는 시골 새보다 이 거리가 짧은 편입니다.
2017년 유럽 10개 도시와 주변 농촌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도시 새들이 사람을 더 가까이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사람은 많지만 포식자는 적은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5개국 37종, 2,701번의 관찰
이번 연구는 이탈리아 토리노대학교의 페데리코 모렐리 박사와 미국 UCLA의 대니얼 블럼스타인 교수 등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영국생태학회 학술지 'People and Nature'에 실렸어요.
연구팀은 2023년 봄 번식기에 체코,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페인의 7개 도시 공원에서 관찰을 했습니다.
도시마다 남성 1명, 여성 1명의 조류학자가 짝을 이뤄 같은 속도로 새에게 곧장 걸어갔어요.
조건을 맞추려는 노력도 꽤 꼼꼼했습니다.
- 키가 비슷한 사람끼리 짝을 지음
- 옷은 흰색, 회색, 검은색 중 비슷한 색으로 맞춤
- 머리가 짝보다 길면 가리고, 관찰 순서도 번갈아 바꿈
이렇게 모은 기록은 77종, 2,701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자료가 충분한 37종, 2,581건을 분석했어요.
결과는 평균적으로 여성 관찰자일 때 약 8.5m, 남성 관찰자일 때 약 7.5m였습니다.
새들이 여성에게 1m쯤 먼저 날아오른 셈이에요.
이 경향은 5개국 모두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까치처럼 쉽게 놀라는 새에게서도, 비둘기처럼 사람에게 관대한 새에게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였다고 해요.
덤으로 알게 된 사실도 있습니다.
수컷 새가 암컷 새보다 사람을 더 가까이까지 허용했다고 해요.
연구팀은 짝에게 대담함을 보여 주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가설을 함께 소개했습니다.
새들은 무엇을 알아챈 걸까요?
아쉽게도 이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습니다.
블럼스타인 교수는 결과는 믿을 만하지만 확실한 설명은 아직 없다고 밝혔어요.
연구팀이 조심스럽게 떠올린 후보는 걸음걸이, 체형의 미세한 차이, 그리고 냄새 같은 화학 신호입니다.
다만 냄새는 새를 직접 만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고 봤어요.
'옛날에 남자가 주로 사냥을 했으니 새가 남자를 더 무서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지요.
흥미로운 건, 새가 사람을 꽤 세밀하게 구별한다는 연구가 이미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연구팀은 둥지에 올라갔던 연구자를 까치가 알아보고 공격한다는 결과를 'Animal Cognition'에 발표한 바 있어요.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서는 까마귀가 위협적인 가면 얼굴을 최대 5년까지 기억했다고 합니다.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 캐나다 맥길대 연구에서는 실험실 쥐가 남성 실험자의 냄새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동물마다 사람을 읽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인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
확인된 것은 유럽 도시 공원의 흔한 새들이 여성 관찰자에게 평균 1m쯤 먼저 날아올랐다는 사실입니다.
나라와 종이 달라도 방향이 같았다는 점도 눈에 띄어요.
하지만 연구팀은 이 결과가 아직 예비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관찰자가 남녀 각 4명뿐이어서, 성별 차이인지 개인 차이인지 완전히 가려내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어요.
조사도 한 해 봄 번식기에만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 도시의 참새나 까치도 같은 반응을 보일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연구팀은 걸음걸이, 냄새, 체형을 하나씩 따로 시험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어요.
다음에 공원에서 비둘기 곁을 지나게 되면, 몇 걸음 앞에서 날아오르는지 한번 세어 보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