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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에서 무한도전까지,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단어의 유래

자연과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관찰자 2026. 5. 9. 20:05

‘소확행’이라는 말, 어디서 시작됐을까

‘소확행’은 처음부터 한국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표현입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용한 신조어 “小確幸(しょうかっこう)”가 그 뿌리입니다.

그는 1986년 에세이집 「랑겔한스섬의 오후」 안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상 속 아주 작지만, 손에 잡히는 행복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이 단어를 꺼냈다고 합니다.

무라카미가 말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장면들

하루키가 떠올린 소확행의 장면들은 생각보다 아주 구체적이고 작았습니다.

  •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순간
  •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속옷을 보는 장면
  • 새 옷 냄새가 나는 하얀 면 셔츠를 입을 때의 느낌
  • 나른한 오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시간

처음 보면 “이게 행복이라고까지 부를 만한가?” 싶은데, 바로 그 점이 핵심처럼 느껴집니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만족,
그걸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제안 같았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번역의 자리

원래 일본어 표현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정도로 풀어 쓸 수 있고,
여기서 줄여 만든 말이 소확행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번역이 널리 퍼졌지요.

점점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일상 속 작은 행복”
같은 표현으로도 변주되었습니다.

형태는 조금씩 달라져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이라는 느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남는 이유가, ‘행복’이라는 단어에 붙어 있던 부담을 덜어 주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거창한 성공을 이루지 않아도, 오늘 하루에서 한 줄 정도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 시대의 키워드가 되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은 시간이 지나며
일본 대중문화와 함께 서서히 회자되다가,
번역서와 미디어를 통해 한국에도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 중후반, 특히 2018년을 전후로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유행어처럼 폭발적으로 번졌습니다.

그 시기에는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키워드”로 소확행을 뽑기도 했습니다.
신문 기사, 예능 프로그램, 광고 카피, 마케팅 문구까지 너나없이
“당신의 소확행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던 때였습니다.

심지어 저는 대기업 회사의 자기소개서 항목으로
'나의 소확행'을 작성했던 적도 있습니다.

SNS에서는 “퇴근 후 컵라면 하나가 나의 소확행”,
“비 오는 날 모래알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뒹구는 시간”
같은 일상의 문장들에 자연스럽게 이 단어가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작은 의식을 ‘소확행’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나의 소확행: 무한도전과 신라면 한 봉지

저도 그 즈음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제 나름의 소확행 장면이 하나 떠오릅니다.

2018년,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번지던 때
저는 집에서 무한도전을 보면서 신라면을 부셔 먹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습니다.
끓인 라면이 아니라, 비닐 봉지를 꼭 쥐고
와그작와그작 부셔서 스프를 살짝 뿌려 먹던, 아주 단순한 그 순간이요.

주말 밤이든, 하루가 애매하게 지쳐 있던 평일 밤이든,
TV에서 흘러나오는 무한도전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손에 들린 신라면 한 봉지는 저에게 “이번주도 수고했다”라고
말해주는 작고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어쩌면 누가 보면 별것 아닌, 아주 단순한 간식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몸은 소파에 기대어 있고, 머리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손은 바삭한 라면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있는 그 시간은
분명하게 “확실한 행복”에 가까웠습니다.

그 시기에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이게 바로 내 소확행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이름을 붙여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무한도전 오프닝 음악만 들어도,
라면 봉지 부스러지는 소리만 나도, 왠지 마음이 살짝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확행’이 유행한 시대의 공기와 마음

소확행이 유행하던 시기는 동시에 “헬조선”, “N포 세대” 같은 말이 일상에 많이 떠돌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기회는 적고, 기대는 높고, 불안은 늘 어느 정도 기본값처럼 깔려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면 충분하다”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생존 감각처럼 퍼졌던 것 같습니다.
소비를 통해 소확행을 즐기자는 광고도 많았지만,
그 속에는 일상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마음도 분명히 섞여 있었던 것 같고요.

무한도전 한 회를 보면서, 잠깐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고 웃을 수 있었던 그 시간.
라면 봉지만 카메라에 잡혀도, 괜히 배시시 웃게 되던 그 감각.
그런 개인적인 장면들도 다 넓은 의미의 ‘소확행 풍경’ 속에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의 ‘소확행’을 떠올려 보게 하는 단어

결국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한 소설가의 에세이에서 시작해,
한 시대의 유행어를 거쳐, 지금은 우리 각자의 일상 속 장면에 조용히 남아 있는 말이 된 것 같습니다.

  • 저녁에 집에 돌아와 반려동물과 눈을 맞추는 시간
  • 출근길 지하철에서 겨우 읽어 내려간 책 몇 페이지
  • 운동을 마치고 땀을 식히며 마시는 물 한 잔
  • 주말 밤, 좋아하는 예능을 틀어놓고 과자를 집어 먹는 시간

이 모든 순간이 각자의 소확행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질 때,
조금 더 작게 나누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불러보는 일.
저는 그 이름 붙이기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질문해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시점의 저는 어떤 장면들을 “나의 소확행”이라고 부르고 싶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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