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은 늘고 심사는 깐깐해지고, AI 시대에 생긴 '투고 제한'
요즘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논문 쓰기는 쉬워졌는데, 논문 내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말입니다.

조금 아이러니하게 들리죠?
그 배경에는 생성형 AI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숫자로 보는 논문 홍수
먼저 수치부터 볼게요.
정식 출판 전 논문이 먼저 올라가는 세계 최대 프리프린트 서버 arXiv(아카이브)가 공개한 9월 한 달 접수 건수입니다.
- 2016년 9월: 9,869건으로 집계.
- 2024년 9월: 20,569건으로 집계.
- 2026년 9월: 40,363건으로 집계.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에요.
2024년 9월 무렵 컴퓨터과학 논문 초록의 4분의 1 가까이에서 대형 언어모델로 손본 흔적이 보였다는 분석이 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AI를 썼다고 다 나쁜 논문은 아니에요.
문장을 다듬거나 코드를 정리하는 데 쓰는 건 이제 꽤 자연스러운 풍경이니까요.
문제는 새로운 결과 없이 겉모양만 갖춘 원고까지 쉽게 쏟아진다는 데 있어요.
심사를 맡는 사람의 수는 그대로인데 원고만 불어나니, 시스템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학회 심사는 대부분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무보수로 맡는 구조예요.
투고가 늘면 한 사람이 읽어야 할 논문도 늘고, 한 편을 꼼꼼히 들여다볼 시간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심사 쪽에도 AI가 스며들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고민거리예요.
심사 의견 일부가 AI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심사 과정의 AI 사용 규칙을 따로 정하는 학회도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생긴 '개수 제한'들
이 흐름에 학계가 내놓은 답이 바로 투고 제한이에요.
가장 화제가 된 건 arXiv의 결정입니다.
2025년 10월 31일, arXiv는 컴퓨터과학 분야의 리뷰 논문과 입장 논문을 학술지나 학회 심사를 통과한 경우에만 받겠다고 발표했어요.
자원봉사 모더레이터들이 LLM으로 만든 듯한 서베이 원고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2026년 10월 1일부터는 한 단계 더 나아갔어요.
분야와 관계없이 제출자 한 명당 한 달에 새 논문 두 편, 동시에 처리 중인 원고는 세 편까지로 묶은 것이죠.
반려된 원고도 그달 개수에 포함된다고 하니 꽤 엄격한 편이에요.
AI 분야 주요 학회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 ICLR 2027: 저자 1인당 20편, 주요 학회 게재 이력이 있는 저자가 없는 논문은 1편까지 허용함
- AAAI-26: 저자 1인당 10편으로 제한함
- IJCAI-ECAI 2026: 저자 1인당 8편으로 제한함
- CVPR 2025: 저자 1인당 25편으로 제한함
ICLR은 2026년 투고 수가 전년보다 약 68% 늘었다는 점을 배경으로 들었어요.
한도를 넘기면 일부 논문이 심사 없이 탈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저자가 많은 대형 연구실일수록 긴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ICLR은 한도를 넘긴 저자에게 먼저 알림을 보내고, 마감까지 조정되지 않으면 무작위로 일부 논문을 탈락시키는 방식을 안내했어요.
앞선 학회들 가운데는 제출 번호가 늦은 논문부터 제외하는 방식을 쓴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실별 제한'이라는 말, 정확히는
흔히 말하는 '연구실별 제한'은 조금 다듬어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해요.
대부분의 규정은 연구실 단위가 아니라 저자 개인이나 제출자 개인 단위로 걸리기 때문입니다.
두 제한은 적용 방식도 조금 달라요.
arXiv는 실제로 원고를 올리는 제출자 한 명에게만 개수가 잡히고, ICLR은 논문에 이름이 오른 모든 공동저자의 한도가 함께 차감됩니다.
다만 체감은 연구실 단위로 올 수 있어요.
지도교수가 여러 학생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구조라면, 교수 한 사람의 한도가 곧 연구실 전체의 상한선처럼 작동하거든요.
반대 목소리도 분명히 있어요.
젊은 연구자나 자원이 적은 기관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지적, 숫자 기준이 임의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 방문연구원이자 토론토대 교수인 댄 로이는 20편이라는 숫자가 임의적이라며, 규정 철폐를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어요.
연구자 입장에서는 어떤 논문을 어디에 낼지, 공동저자 이름을 어떻게 올릴지까지 미리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앞으로의 심사는 어떻게 달라질까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양보다 질'로 돌아가자는 신호처럼 읽혔어요.
AI가 글을 대신 써 줄 수는 있어도,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니까요.
AI 사용 여부를 밝히도록 요구하는 학회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요.
투고 제한이 정답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심사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