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과학 이야기/동물들의 재밌는 과학 이야기

공룡은 사라졌는데 악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2억 년 동안 '따뜻한 곳으로 이사 다닌' 생존법

자연과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관찰자 2026. 11. 3. 11:01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그 시절 공룡 곁에 살던 악어는 지금도 강가에서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같은 재앙을 겪었는데, 악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지난 10월 21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이 실렸어요.
열쇠는 의외로 '바뀌지 않는 고집'이었습니다.

 

악어 집안은 공룡만큼 오래됐어요

악어와 그 친척들을 묶어 '위악어류(Pseudosuchia)'라고 부릅니다.
이 무리는 2억 4천만 년도 더 전인 트라이아스기에 등장해, 첫 공룡이나 포유류보다 먼저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옛 악어 친척들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습니다.
땅 위를 누비던 길이 약 9m의 최상위 포식자도 있었고, 풀을 먹거나 바다를 헤엄친 종류도 있었어요.

약 7,500만~8,200만 년 전 북아메리카에 살던 '데이노수쿠스'는 길이가 10m를 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0년 연구에서는 바나나만 한 이빨로 물가에 온 공룡까지 사냥했을 것으로 봤어요.
공룡도 무서워했을 악어가 있었던 셈이에요.

적응하는 대신 '이사'를 다녔어요

영국 런던대(UCL) 알피오 알레산드로 키아렌자 박사 연구팀은 400종이 넘는 멸종·현생 악어류의 족보를 만들었어요.
여기에 7,000건 넘는 화석 기록과 오늘날 악어 약 13만 건의 분포 기록, 2억 4,500만 년에 걸친 기후 모의실험을 겹쳐 보았습니다.

결과는 뜻밖이었어요.
공룡과 포유류가 다양한 기후에 몸을 맞춰 간 것과 달리, 악어는 좋아하는 온도를 거의 바꾸지 않았습니다.
조상은 약 23℃, 오늘날 악어는 26~30℃ 정도를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됐어요.

대신 사는 곳을 옮겼습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극지방 쪽으로 퍼졌고, 추워지면 적도 쪽으로 물러났어요.
약 5,000만 년 전 유난히 더웠던 시기에는 남극에도 악어가 살았다고 해요.

 

소행성 충돌 뒤에도 따뜻한 피난처가 남았어요

6,600만 년 전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소행성이 떨어졌습니다.
먼지가 햇빛을 가리며 지구가 식었고, 당시 생물 종의 약 75%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연구팀의 모의실험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 적도와 아열대에 악어가 살 만한 땅이 남아 있었어요.
햇빛이 15%나 줄어드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그런 곳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반면 온대나 극지방에 살던 공룡들은 제때 옮겨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적게 먹고 오래 버티는 체질

몸의 특징도 한몫했습니다.
악어는 변온동물이라 비슷한 덩치의 정온동물보다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들어요.
큰 악어는 1년 넘게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과 땅을 오가는 생활, 가리지 않는 식성, 비교적 작은 몸집도 도움이 됐을 거라고 연구팀은 설명해요.
먹이가 귀해진 재앙 직후에는 '덜 먹어도 되는 몸'이 큰 장점이었을 겁니다.

 

오늘날 악어에게 남은 숙제

다만 이 생존법이 앞으로도 통할지는 알 수 없어요.
공동 저자인 필립 매니언 교수는 도로와 농지, 도시 때문에 오늘날 악어가 기후 변화에 맞춰 서식지를 옮기기 어려워졌다고 짚었습니다.

이번 결과는 화석과 기후 모델로 그린 추정이라, 화석이 더 나오면 그림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2억 년 넘게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버텨 온 악어를 떠올리면, 그 느긋한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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